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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조한승의 세상사는 이야기, 아아 어찌 잊으리, 그날을...

2023-06-25 09:58

<前 강화덕신고교장, 통진고교장, 김포외고교장, 현 김포새마음경로대학장>


저는 육이오 전쟁때 국민학교 오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군인으로 참여하여 싸우지는 못했지만 전쟁 삼년내내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날을 못 잊습니다.


천구백오십년 유월 이십 육일 아침에 학교에 가서 보니 어떤 모르는 사람들이 교실마다 가득찼습니다.


그 사람들은 개성과 해주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랍니다. 우리 어른들께서 그들을 피난민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튼날 또 학교로 가니까 선생님들께서 집으로 가라고 하셔서 집에 오니까 피난을 가자는 것입니다.


피난이 무엇인지 모르고 봇짐을 지고 평택까지 걷고 또 걸어서 갔습니다.


소래쯤가니까 인민군들이 머리와 옷에 나무를 꺽어서 꽂고 피난민들과 함께 남으로 갔습니다.


수원쯤가니까 미국 비행기가 폭탄을 던지고 총을 쐈습니다.


그런데 인민군 그들은 비행기에서 보면 나무같으니까 우리 피난민들만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것을 빨갱이들은 양민학살이라고 부르더군요. 더 이상 피난을 갈수없으니까 야간을 틈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오니 모든 것이 불타고 파괴되었습니다. 온 가족들이 굶고, 약한 사람들은 죽어 갔습니다.


추석때쯤되니까 미군들이 들어왔습니다. 미군들은 그들이 먹던 것을 주었습니다. 그통에서 미국사람도 처음 보았고 “할로”, “껌”, “쵸코렛드 기부미”등 영어도 배웠습니다.


그때 북으로 도망치던 빨갱이들이 동네 어른들을 새끼로 묶어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총으로 쏴죽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무서워서 울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나니까 동네사람들이 빨갱이들과 그 가족들을 총으로 쏴죽이더군요. 같은민족(?)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이쪽은 저쪽을, 저쪽은 이쪽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죽이는 그 무서운 꼴을 직접 경험한 저는 지금도 무섭습니다.


언제까지 이럴건지? 얼마나 더 죽이고 죽을건지? 언제까지 다른나라의 먹이가 될건지?  우리아이들이 무슨죄가 있어서 그런 꼴을 당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리 모두 정신차려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을 분별해야 합니다. 비극의 육이오,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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